극희귀질환자의 삶

내 나이 24살, 극희귀질환자가 되다.

Talented Jade, But Couch Potato 202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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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희귀질환 : 우리나라 유병인구가 200명 이하로 유병률이 극히 낮거나 별도의 상병코드가 없는 질환
 
2023년 2월 평소랑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공부를 하고 남자친구를 만나고 일을 하고 좋아하는 수영을 하러 가는 그런 평범한 하루.
 
나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한 달에 꽤 여러 번 자유수영을 다녔었다.
그렇게 평소 페이스대로 자유수영을 하고 있는데, 200M를 넘길 때 즈음 숨을 들이쉬는데 천명음이 들렸다.
쌔액 쌔액... 숨이 들이쉬어지지 않았다.
숨이 엄청 차는데 아주 작은 빨대로 숨이 들어오는 그런 느낌이랄까 
 
생각해 보니 근래 들어 몸이 조금 이상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기침을 좀 했다.
그 기침 끝에는 아주 약간에 피가래 나왔다.
평소 역류성 식도염이 심한지라 역류성 후두염까지 도진 걸까 하며 내과와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내과에서는 약만 처방해 주고 이비인후과 내시경 검사에서는 약간의 염증만 있을 뿐 괜찮다는 소견이었다.
다행인 걸까 하며 평소처럼 약을 복용하고 잘 쉬어야겠다 생각할 뿐이었다.
 
그날 저녁 평소처럼 남자친구를 만났다.
수영을 했다고 자랑을 하고 그 때문인지 등이 아프다고 하며 안마를 해달라고 두들겨달라고 했었다.
단순히 근육통인줄 알았는데, 다음날 아침부터 갈비뼈가 미친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눈을 떴을 땐 그저 뻐근했다.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나갈 채비를 마쳤을 때 즈음 오른쪽 갈비뼈 부근에서 연결된 뒤까지 극심한 통증이 시작됐다.
나 출근한다! 이야기를 남기고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는데, 그대로 아파서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잠깐 숨 돌리고 괜찮아졌을 때, 출근을 했다.
그때 내가 했던 일은 혼자 매장을 관리하고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라 내 자리를 메꿔줄 사람이 없었으니 무조건 가야 했다.
 
그렇게 아픈데 왜 참고 출근을 했냐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우선은, 직장인 혹은 아르바이트생 등등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그 이유다. 돈 벌어야지. 내 일에 책임은 져야지.
그리고 다음 이유는 평소에도 자잘하게 아팠던 나라서 통증을 견디는 건 꽤 쉬운 일이었다.
또한 나이가 어리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주 작은 매장에 손님도 별로 없어서 주로 하는 업무는 컴퓨터로 온라인 매장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움직일 일이 거의 없는 매장이라 앉아서 가만히 일을 하는데, 어째서인지 점점 더 아파졌다.
팔을 올려서 마우스조차 잡지 못할 만큼 아파져 버린 것이다.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서 너무 아파서 병원을 당장 가야 할 것 같다고 사정을 설명드리고, 바로 근처에 있는 2차 병원으로 향했다.
의원이 아닌 2차 병원을 간 것은 그 근처에서 우리 어머니께서 일을 하셨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이자 큰 병원이었기 때문에 갔다.
갈비뼈가 아프다... 무슨 과로 진료를 받아야 하지? 고민을 하며 앉아있다가 뼈문제는 아닌 것 같아 그럼 내과려니 하고 접수를 했다.
경증일 때는 진료과를 아무 곳이나 돌아도 상관이 없겠지만, 중증이 되면 과 선택 하나가 결과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나는 내과를 선택한 게 참 잘한 일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병원 프로세스대로 아픈 곳 얘기하고 엑스레이 찍고 앉아서 기다리는데, 내 앞에 거의 다 죽어가는 힘겨운 몸짓을 하며 고등학생이 누워있었다.
어어... 나는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닌데 어쩌다 저랬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앉아있었다. (알고 보니 그 친구가 나랑 같이 입원을 하게 됐는데 병증도가 내가 훨씬 더 심각했다고 한다ㅋㅋㅋ)
 
꽤 시간이 지나서 아픈 갈비뼈를 부여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대수롭지 않게 젊은 사람이 들어오는가 보다 하고 나를 한번 보시고는 엑스레이를 보시더니 이내 심각해지셨다.
얼른 모니터를 돌려 나한테 보여주시고는 "오른쪽 폐 아래쪽이 다 하얘요. 폐렴이 의심되는데 이 정도면 당장 입원해서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CT와 피검사도 하자고 하셨다. 결과는 폐렴이 맞는 거 같다고 하셨다.
음... 내가 폐렴..? 다른 증상을 물어보셔서 숨이 좀 차고, 피가래가 나왔다 정도로 말씀드렸더니 입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아까 말했다시피 내 일 땜빵해 줄 사람이 없었고, 폐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입원씩이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항생제를 맞자고 해서 그건 동의를 했고, 항생제 알레르기 테스트를 하고 항생제를 맞으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그때 맞았던 항생제 이걸 일주일이나 더 맞을지 몰랐지. 아 폐에는 효과가서 없어서 그런지 후두염은 낫더라ㅋㅋㅋ

 
간호사 출신이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물었더니 입원을 해서 쉬면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그냥 입원을 하라고 하셨다.
뭐 별 수 있나 엄마 말인데 알겠다 하고 바로 입원한다고 했다.
 
입원 수속을 밟고 짐을 간단히 챙겨서 병원으로 다시 왔다.
당시는 코로나 완화 전이라 코도 찌르고 결과가 나오고 병실로 올라갔는데, 내 생애 첫 입원이었다.
아프긴 했지만, 놀 생각에 아이패드랑 그림 그릴 거 뭐 놀만 한 거 챙겨갔는데
점점 더 아파서 결국엔 하나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는 사실ㅋㅋㅋ
 

영양제랑 항생제. 지금 생각해보면 돌아다니는게 엄청 위험한 행동이었다.

 
피검사 결과도 염증 수치 당연히 높고 그에 수반하는 검사 수치들이 엄청 오르고 엄청 내려가있고 뭐 그랬다.
그 당시에는 뭔지 몰라서 파랗고 빨간 게 아 그냥 내가 많이 안 좋구나 생각만 했다.
 
한 일주일 정도 수액이랑 항생제를 맞고 갈비뼈 통증으로 마약성 진통제까지 먹었다.
하지만 전혀 호전이 없었다. 오히려 몸무게가 한 7킬로 정도 늘어날 수준으로 퉁퉁 붓기만 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선생님께서는 CT를 조영제 넣고 한번 더 찍어보자고 하셔서 바로 진행했다.
조영제 처음 맞아봤는데 온몸이.. 특히 사타구니 쪽이 뜨끈해지는 게 느낌이 이상했다.
걱정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상황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실감이 안 돼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허허 뜨끈하네 이랬던 거 같다ㅋㅋㅋ
 

조영제까지 맞아서 양팔에 주렁주렁

 
내가 저렇게 멍청하게 생각하고 일주일 동안 지내는 동안 내 결과는 심각했다.
결과는 폐색전증.

폐색전증이란?
다리에 위치한 깊은 부위의 정맥(심부 정맥)에 혈전(혈관 안에서 혈액이 부분적으로 응고된 것)이 생기고 이것이 우심방, 우심실을 거쳐 폐의 혈관으로 이동하여 폐의 혈관을 막은 상태를 폐색전증이라 합니다. 색전이라는 용어는 혈전이 혈관을 타고 이동하여 체내의 다른 혈관을 막아 일으키는 병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바로 퇴원을 하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하셨다. 
상당히 급하신 모양이었다. 예전에 같은 케이스의 환자가 있어서 의심을 하긴 했으나 젊어서 폐색전이라고는 생각을 못하셨다고 한다.
암튼 위에 설명과 같은 상태로 폐의 큰 동맥이 막혀 하위 혈관에 혈액이 공급받지 못해 폐의 4분의 1 가량이 제 기능을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고, 혈전이 또 떨어져서 어디에서 막힐지 모르는 상황이고 혹여나 심장에서 막히면 즉시 심장마비, 뇌에서 막히면 뇌졸중이 올 수 있어서 한시가 급하다고 하셨다.
 
그 시간대가 한 5시 좀 안됬었나 암튼 오후정도 음 퇴근시간 대였던 거 같은데,
아버지랑 어머니랑 오셔서 퇴원 수속하고 서류도 받고 용인세브란스랑 분당서울대 추천받아서 고민하다가 분당서울대 응급실로 향했다.
이것도 참 잘한 선택이었지.
우리는 구급차를 안 타고 개인차량으로 이동했는데, 퇴근시간이라 차가 엄청 막혔었다.
용인에서 분당으로 가야 했기에 이 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정말 최악의 정체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운전하시는 아버지는 마음이 급하셨고 어머니는 진정시키기 급급했다. 그 와중에 나는 아파서 사실 차에 탄 것만 기억나지 어떤 길로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희미하다.
그렇게 응급실에 도착을 하긴 했다.
 

살다살다 내가 응급실에 올 줄이야.

 
요새 응급실 상황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웬만히 아파가지고는 못 들어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길게는 며칠 기다릴 생각으로 갔는데
가서 코로나 검사부터 하고 CT랑 소견서 제출하고 조금 기다리니까 바로 응급실 병상이 났다.
허? 밖에서 기다리다 지쳐서 대기 의자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던데...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이 날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운이 좋다기보다는 내가 엄청 위험했던 상황이었겠지.. 아무튼 병상에 누워서 대기를 하다가
간호사분이신지 의사 선생님이신지 오셔서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근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모르겠고 뭐가 순식간에 지나가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피검사를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거 같아 보였다. 되게 여러 번 많이 뽑고 심장 모니터링 때문에 화장실도 못 간다고 해서 병상에서 보라는데 도저히 안 나와서 그냥 말하고 그때만 모니터링 빼놓고 화장실 갔다 오고
 

주렁주렁 이게 다 뭐람

 
체중도 재고... 아 내 생애 처음 보는 몸무게였다. 본인은 평균체중 65-66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때 기억하기로는 74킬로까지 나갔던 거 같다. 전부다 붓기였다. 신발이 아예 안 들어가고 발이 진짜 거짓말 안치고 족발처럼 퉁퉁 부어있었으니까...
 

아니 그니까 이게 발이 부어서 키가 더 크게 나왔다니까요?

 
같이 체중 재러 간 선생님한테 저 평소에 몸무게가 65-66인데 이런 체중 처음 봐요.. 이게 맞나요? 하면서 믿을 수 없었다.
수액 맞으면서 화장실도 거의 못 갔으니까 부을 만도 하지
 

슈바인학센이라고 놀렸던 내 발. 발목 봐 우와...원래 제 발은 혈관이 튀어나오고 발 뼈가 보여요...

 
폐색전이 오면 심장에 대미지가 와서 붓거나 이상이 생기거나 그럴 수 있다고 초음파도 봤다.
초음파 보시는 선생님께서 처음에는 다급하게 오셔서 검사를 하다가 와 정말 건강하다고 폐 상태도 그렇고 몸이 이렇게 부었는데 어떻게 이상이 없지 하면서 가셨다.
ㅋㅋㅋㅋㅋ이것만큼은 내가 확실히 기억한다ㅋㅋㅋㅋㅋ말은 다를 수도 있는데 저런 뉘앙스였다.
 
이 이후로는 검사 결과 기다리고 입원실 자리 나기를 기다렸다. 거의 밤을 지새웠던 것 같다.
나는 그래도 누워있었는데 울 엄마 옆에서 앉아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ㅠㅠ
웃긴 건 그 와중에 나 괜찮다고 앉아있고 싶으니까 엄마 보고 누워있으라고 했다ㅋㅋㅋ
 
시간이 좀 지나서 새벽 즈음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검사 결과 다 확인하고 폐색전증이라 혈전을 녹여야 해서 배 피부에 혈전 녹이는 약을 놓고 가셨는데 그게 진짜 맞아본 주사 중에서 제일 아팠다.
그러고 아침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혈전약도 맞았고 좀 안정되는 거 같아서 엄마랑 아빠랑 식사하러 가시라고 하고 좀 쉬었다. 혈전용해제 맞기 시작하니까 화장실 엄청 많이 가서 슬슬 부기도 빠졌고
 
오후쯤 드디어 입원실 자리 나서 입원 수속을 하고 약 먹고 주사 맞고 약 먹고 주사 맞고 수액 맞고 밥 먹고 자다가 아파서 깨고 새벽에 또 주사 맞고 기절하고 무한 반복하다가
배에 멍 실컷 들고 다음날 갑자기 퇴원을 하라고 해서 퇴원을 했다.
처음에는 일주일 더 있을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내가 회복이 빨랐나...? 모르겠다.
수치랑 다 비정상이었으나 외래진료 + 경구약으로 해결을 했다.
 

2월 10일 처음 응급실 와서, 2월 12이 약을 몇 차례 맞고 나서

 
3개월 동안 계속 외래진료로 병원을 계속 들락날락했고
항응고제를 한 3개월 더 먹고 부작용으로 혈뇨도 보고 피나면 잘 안 멎어서 위험한 행동은 조심하라고 해서 운동도 몬하고... 빈혈이 와서 핑핑 돌기도 하고..
그러한 결과로 혈전은 깨끗하게 치료 됐고 아쉽게도 폐 끝부분 세포는 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고 얘기를 하셨다.
자연치유를 기대해 볼 뿐이었다.
 

지겨워 지겨워 검사

 
그렇게 6개월 후에 모니터링 검사를 하고 수치가 올랐지만, 정상 범위라서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난 이제 다 끝이다 하며 너무 기뻤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2024년 1월,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병원 정책이 바뀌어서 추후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원인을 찾으라고 했었나?
아무튼 내 케이스로 콘퍼런스가 열려서 다른 교수진들과 회의를 해본 결과로 원인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병원 외래진료를 잡고 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자연적으로 혈전이 생기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고 그때 당시 PMS(생리 전증후군)으로 인해 복용하던 피임약(호르몬제)이 원인인 것 같은데
혈전을 생성하기엔 원인인자로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혈전 생성을 시키기 위한 정도가 대, 중, 소로 있다면 호르몬제는 한 중 정도?
그래서 또 피검사를 했다. 원인 찾을 때까지 피 엄청 많이 뽑은 것 같은데...
 
혈액응고검사를 진행했는데
대부분 음성이 나왔지만, FANA Filter라고 하는 항핵항체 검사에서 1:320으로 양성이 나왔고,
활성 단백질 S가 28로 정상수치 50에서 절반가량 떨어진 수치가 나왔다.
이 활성 단백질 S는 재검한 결과였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유 단백질 S 검사를 추가로 하는데 거기에서는 52.5%로 낮은 수치가 나왔다.
병원 수치는 50% 이하여야 비정상이라 하는데, 희귀 질환 기준에서는 55% 이하를 결핍증으로 간주한다.
 
암튼 단백질 S 부족으로 혈액종양내과로 전과를 했다. 이 전에는 폐 질환이라 호흡기 내과 진료를 봤다.
 

처음엔 암센터라고 이름만 보고 개쫄...

 
대학병원은 예약시스템이 있어서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진료를 봤다.
환자는 많은데 의사가 적어서.. 하필 또 의료문제 많을 때였다.
 
아무튼 혈액종양내과에서는 피임약만 가지고는 혈전의 원인이 되기는 어렵다고 다른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자가면역질환 관련 질환에서 양성이 나왔으니까 류머티즘내과 진료를 보고 오라고 하셨다.
단백질 S 수치도 낮아서 6개월 주기로 재검사하기로 했고
 
류마티스내과 가서 혈전 관련된 질환을 찾을 수 있는 검사를 진행했고 다 음성이었다.
그래도 항핵항체가 양성이니 1년에 한 번씩 재검사하기로 했다.
 
이렇게 병원에서 여러 진료과를 돌아다니고 얻은 건 애매하게 낮은 단백질 S 수치와 항핵항체 양성인 상태였다.
1월에 시작해서 5월까지 검사를 받고 난 결과였다.
 
그리고 9월이 되어 혈액종양내과 재검을 하는 날이 왔다.
혈전수치를 검사했는데, 1.11로 기준 수치인 0.5를 두 배 이상 넘었다.
피임약이나 혈전을 유발할만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상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혈전이 실제로 생기면 이 수치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오기 때문에 유의미하지는 않다고 약을 쓸 수 없다고 했다.
또 그렇게 찝찝하게 병원을 나왔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었다.
 
수치가 비정상인데 그냥 집에 가라고 하니 걱정이 안 될 리가 있나
한 달 동안 단백질 S결핍증이랑 혈전과 관련된 자료만 엄청 많이 찾아본 것 같다.
극희귀질환이라 케이스가 없어서 인터넷에 찾아도 안 나오고 네이버, 다음, 구글은 물론 다 검색해 봤지만 병에 대한 정보만 나왔다.
열심히 찾고 찾아서 나온 게 카페에 몇 분 정도 이 병이 걸리신 분들의 이야기.. 그게 다였다.
당연히 내 나이대는 없었고, 만약 내 나이대여도 임신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하락한 상태이신 분들이었다.
대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논문도 막 찾아보고 그랬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다지 얻은 게 없었다.
 
나는 학부에서 생리학과 기본적인 몸에 대한 것들을 많이 배웠는데
그중에 혈액의 순환과 폐색전의 증상 발현 순서 같은 것을 많이 접목해서 생각을 해봤다.
사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고 섣부른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케이스가 없었기 때문에 그 불안함을 이겨내려면 뭐라도 찾고 머리에 작은 지식이라도 채워 넣어야 했다.
 
폐색전증이 심부정맥 그러니까 하지에서 발생한 혈전이 순환을 해서 심장을 지나서 폐에 박힌 것이라고 했으니까
하지정맥류를 검사하고 치료를 하면 이 병에 대한 예후가 좋지 않을까
(정확한 병명을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수치로는 확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네 일반외과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 내 병과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선생님께서는 외관상으로는 확실히 하지정맥류로 보인다. 그러나 검사를 하고 나서 확실히 검사 결과가 하지정맥류라고 나와야지 실손보험 청구도 되고 그 이후로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은 주치의 선생님과 먼저 상담을 하고 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검사 비용이 비싸서 아니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결국 11월에 다시 분당서울대로 가서 주치의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다.
하지정맥류 진료를 보고 심부정맥혈전증이랑 초음파 검사를 한 후에 치료를 시작한다고 하셨고, 치료 방법은 혈관경화제를 사용할 건데 내가 그걸 사용해도 괜찮냐. 혈전 생성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그리고 병원 검사 기준에서는 단백질 S 수치가 못 미치지만 희귀 질환 기준에서는 충족을 하는데 산정특례 등록이 가능한지.
이런 것들을 물어봤고 교수님이 친절하게 다 답변해 주셨다.
 
우선 하지정맥류 치료를 하는 것에 굉장히 찬성을 한다. 하지만 시술, 수술 후에 혈전 위험이 높아지는 점을 꼭 알아두고 있으라고 하셨고 작은 증상이라도 나타나면 바로 응급실로 내원하라고 하셨다.
단백질 S 수치가 낮아서 단백질 S결핍증이 맞고 산정특례 대상자에 해당되는데 9월 진료 당시에는 치료받고 있지 않아서 산정특례 적용은 안 해두셨다고 한다. (선생님 미리 말씀 좀 해주시지.... 모니터에 계속 떴다면서요....)
이걸 등록하려면 고비용의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고 신경과 추가 진료도 필요하다. (주치의 포함 의사 2명의 동의가 필요함)
추후에 임신, 출산이나 관련된 다른 과 진료가 필요하면 미리 등록하는 것이 좋다고 하셔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아 그리고 인터넷에 아무리 찾아도 관련된 질병에 대한 정보가 안 나온다고 했더니 인터넷에도 안 나올 만큼 어렵고 희귀한 질환이라고 하셨다...
 

유전자 검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단백질 S결핍증 환자가 되었다. 예상은 꽤 하고 있었어서 그다지 타격은 없었다.

사진을 왜 삐딱하게 찍어서 모자이크하기 참 힘드네

 
유전자 검사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8주 정도 시간이 걸렸다.
매일매일 똥줄 타는 심정으로 기다렸고, 분당서울대병원은 좋은 게 휴대폰 어플로 검사결과 확인이 가능했다.
8주 차가 될 때 즈음 결과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는 관련된 유전자 중 모계인지 부계인지 모를 유전자에서 이상이 발견됐다고, 선생님께서는 예상은 하셨지만 진짜로 나올지는 몰랐다고 하셨다.
검색을 하다못해 영어로 된 사이트들을 다 뒤졌는데, 우리나라에는 정보가 아예 없으니까..
아주 적은 단백질 S 결핍증 환자들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모여있는 사이트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내 변이가 그래도 비교적 꽤 있는 편에 속했다. 순위로 따지만 그래도 중위권..? 중상위권이었나..? 아무튼
 

컥 나 진짜 극희귀질환자라니

 
지금은 단백질 S결핍증으로 확진을 받고 산정특례 등록까지 마무리한 상태로 글을 작성하고 있다.
동네 외과에서 하지정맥시술받는 게 걱정된다고 아버지께서 그냥 대학병원에서 진행하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조만간에 분당서울대에서 외과 진료를 볼 예정이다.
 
아직은 젊어서 운동하고 오메가 3나 뭐 혈전에 좋은 거 많이 챙겨 먹으면서 관리하고 있고 특별한 치료는 안 받고 있다.
주기적으로 검사는 받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증상이 발현하면 바로 응급실로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 매우 매우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고 더군다나 나는 자가면역질환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어서 더 예민하게 체크하고 있다.
단백질 S가 낮은 것만으로는 컨디션이 이렇게 떨어지고 아플 수가 없는데 근래 들어서는 너무 많이 여러 군데가 아파서 진짜 자가면역으로 의심 중이다.
내 친구는 유전으로 인한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고 약 먹으면서 치료하고 있는데, 내 증상을 말해주면 본인이랑 비슷한데 어떻게 버티고 사냐면서 병원 얼른 가라고 이야기해 준다.
대학병원,... 예약도 힘들고 가기도 힘들고 막상 갈 때쯤 되면 멀쩡해져서 아무것도 안 나오니 뭐....
 
아프지만 그래도 적당히 살다가 가고 싶다.
결혼도 준비하고 있고, 아이도 낳고 싶은데 이 질환은 임신, 출산에 매우 불리한 질환이기에 그저 두려울 뿐이다.
 
허엉 무서워라.
그래도 다 덤벼라 아픈 것들아 이겨내 줄 터이니
 
p.s. 아픈 와중에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원하는 자격증도 다 취득하고, 대학교 졸업도 하고, 결혼 준비 중이고, 이사도 두 번이나 하고, 크로스핏도 시작하고, 수영도 계속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등등 등등
매우 많은 일을 했죠 히히 저 꽤 강합니다..? 다만 심리적으로 조금 불안정해서 병원의 도움을 좀 받고 상담도 받고 그랬지만 어쨌든 매일매일 싸워나가는 중입니다.
아직까지는 내가 이기고 있으니... 내가 어디 가서 지게 생기지는 않았고등여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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